[나를 묻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묻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묻다] 김동엽

김동엽은 도전적이고 사람을 사랑하며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잊지 않고 무엇이 자신의 몫인지 고민한다. 때론 그의 몫보다 큰 책임을 지려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임을 억울해하며 외면하기보단 기꺼이 책임을 지기로 선택한다. 그에겐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동엽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나눌 수 있길 원하기에 자신이 책임지기를 선택하고, 책임을 잘 지기 위해 고민한다.

때로 책임은 무겁고, 어디까지 내가 져야만 하는 책임인지 선을 긋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책임은 짐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실존주의에 따르면 책임은 자유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죽음 이외에 무엇 하나 정해져 있지 않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책임을 진다. 즉, 책임은 불확실함을 자유로 누리게 해주는 권리이자 본능이다.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의 기본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식해야하는, 놓지 않고 져야하는 책임이란 무엇일까?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책임이라면, 실존적이고 본래적인 책임은 자신이 만들어내고 싶은 삶의 의미를 창조해내는 방향으로 행동할 책임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책임짐으로써 본래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창조해낸다.

무겁게 느껴지는 책임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삶의 의미를 위해 지는 책임이 맞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책임으로 타인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내가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가?

김동엽이 자신의 삶에서 창조해내고 싶은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을 실천하는 것, 타인의 아픔을 보듬는 것, 함께함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 그가 자신의 삶에 바라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김동엽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이름을 소개해줄래?

이름의 뜻은 동력 동(東)에 빛날 엽(燁) 자를 써서 동쪽에 빛나는 별이라고 뜻을 가지고 있어.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

기억에 남는 여름날이 있어?

고등학교 끝나고 자전거 여행을 갔던 여름이 인생에서는 제일 기억이 많이 남는 것 같아. 많이 힘들면서도 여러 사람들 만나면서 의미가 많았어. 애초에 계획을 무전 여행으로 잡아서 가방에 고구마나 빵이나 이런 것들을 싸서 갔었는데 물도 한 번도 사 먹은 적 없었고, 숙박을 위한 돈도 안 챙겨갔었어. 혹시나 다치거나 이랬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버스비 4만 5천원, 딱 그것만 가지고 갔어. 젊은 날에만 할 수 있었던 생각과 경험이지. 첫날에는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얘기하면서 가다가, 그 할아버지 텐트에서 잠을 자기도 했었고. 또 충주부터는 공원에 마실처럼 자전거 타러 나온 형이 있었어. 그 형이랑 얘기하면서 가다가 형도 얘기하는 것도 즐겁고 도전 욕구가 솟아났나 봐. 그래서 부산까지 같이 내려갔거든. 옥상에서 그 형이랑 같이 자기도 하고. 결국엔 부산에 도착해서 자갈치 시장 가서 같이 소주 먹고.

이제 막 시험도 끝나니까 그런 걸 하고 싶어.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는 그런 경험을. 나 혼자도 괜찮은데 친구랑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왜냐하면 그 친구에 대해서 다 알 수 있으니까. 또 얘기하면서 가는 것도 재밌거든.

하늘 보는 걸 좋아해?

좋아하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펼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왔었거든. 그러다 보니까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물이나 다 아름다워 보였어. 공부를 하면서 좀 더 많이 봤던 것 같아. 우주라든가 생물이라든가 이런 자연과학도 많이 공부를 하니까 어떤 불안정성, 규칙 없는 어떠한 것에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게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 인간이 알고 있는 건 굉장히 협소한데 그 안에서 불안정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규칙을 만들어 가고, 구름이나 하늘에 보이는 게 매번 다르잖아. 매번 다른데 그 나름의 규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뭉쳐져서 어떠한 형태를 만든다는 사실들이 나는 너무 재밌었어.

한편으로는 아쉬워. 고등학교 이후로 나를 위해서 품을 수 있었던 시간이 딱히 없었어. 그냥 딱 다이렉트로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또 대학에서도 로스쿨 준비를 했으니까 학점 관리하고 학생회장 하고, 여러 활동 계속 하고, ROTC까지 했으니까. 이런 시간들을 좀 더 일찍 경험을 하고 알게 되었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너무 감사해. 어떤 결과가 됐든 너무 감사한 것 같아.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잖아. 주로 찍는 사진은 어떤 거야?

주로 찍는 사진은 여자친구 사진. 찍어주고 싶어서 산 것도 있고. 그 사람의 시간을 내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거잖아. 그 사람의 시간을 남겨주고 싶었어. 내 눈에는 제일 아름다운 때고, 그 때를 남겨주고 싶었어. 돌아보니까 남는 게 여행 갔다 온 그런 좋은 기억들이랑 사진밖에 없더라고. 그리고 앞으로의 그리고 현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를 지지해 주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는 걸 공부하면서도 느꼈던 것 같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더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이거든. 그래서 혼자 공부하는 게 힘들 때도 있었어. 근데 그럴 때 사진을 보고 위로를 받았던 게 많아. 그만큼 사진이 주는 감사함이 큰 것 같아. 그래서 그걸 나도 내가 사랑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한테 선물해주고 싶었어.

요즘 제일 익숙하고 편한 게 있으면 어떤 거야?

나는 지금 익숙한 것 하고 편한 것 하고는 달라. 익숙한 거는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해먹고 공부를 했었던 거고. 편한 거는 그 공간을 벗어나서, 벗어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혼자 공부하는 건 어땠어?) 난 나름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데, 아쉬움이 좀 있기는 하지. 좋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그 사람들이 필요한 내가 있으면 좀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걸 실천할 수 없는 현실이 제일 힘든 것 같아. 또 나한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친구들이나 아니면 가족들이,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한테 최대한 폐가 되지 않게 불편이 되지 않게 애써주는 게 고맙지만 미안하지.

반대로 너의 삶에서 어색하거나 불편한 게 있다면?

최근에는 내 삶에 이질적인 거는 아직 없는데 걱정되는 건 있어. 나는 가족이 내 인생의 가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물론 내 인생 전반에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만약에 그게 가정이나 가족을 흔들게 된다면 난 그 일을 포기할 거야. 원래 나는 언론인이 꿈이었거든. 피디를 하고 싶었어. 근데 내가 원하는 합리적이고 온당한 메시지를 내고 싶은 상황에서 이것 때문에 직업적인 지위가 흔들리고 또 그 결과로서 내 가정에 영향을 분명하게 미치는 게 다분하잖아. 나는 가정을 생각했을 때 안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런 중요한 가치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은 직업보다는 다른 길로 가는 게 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을 했었어. 아빠가 인생에서 나에게 가장 크게 가르쳐주신 게 ‘신의’라는 가치인 것 같아. 나도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올해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세웠던 계획이 있었어?

절을 할 때 어렸을 때부터 그런 버릇이 있었어. 절을 하면서 속마음으로 생각을 해. 부탁을 하는 거지 조상님들한테. 그때 항상 제일 먼저 비는 게 가족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이고, 그 다음은 내가 후회 없이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살짝 욕심 부려서 열심히 한 것들이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이번 해 목표를 따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행복한 결정이고 행복한 결과였으면 좋겠어.

어떤 관계의 알고리즘이 쉽게 깨질 수 있으면서도 또 한번 만들어지면 굉장히 단단해질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이미 많은 기회와 시간들을 내 결정에 의해서 놓쳤어. 그래서 그 알고리즘을 나는 좀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 나중에도 서로 힘들 때 도와줄 수도 있고 그런 게 내가 인간으로서 내 존재를 최고로 온당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인터스텔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이제 두 행성을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었어. 근데 하나는 어떤 여자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인물은 감정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행성을 가고 싶어 했어. 근데 논리적으로는 다른 행성을 가서 확인을 하는 게 맞아. 근데 어떤 논리보다도 감정이 방향을 결정해 주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왜냐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 맞는 게 거의 없거든. 공부하면서 진짜 많이 느꼈어.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을 하고, 이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제일 논리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근데 그런 알고리즘은 쉽게 부서질 수도 있고 단단하게 구성될 수도 있는데 내 결정으로 인해 그런 기회를 많이 놓쳐왔으니까. 난 그게 굉장히 아쉬운 사람이거든.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좀 많이 만나고 얘기 들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게 개인적인 욕심이야.

닮았다고 생각하는 나무가 있다면?

닮은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 보통 곧은 절개가 아름다운 그런 나무들을 많이 선호하잖아. 근데 나는 소나무의 굴곡이 품격있어 보이는 것 같아. 내 가치를 생각해보면 뭔가 나는 폼나는, 뽐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나무들도 다 그렇잖아, 보통의 나무들은 아름다운 계절이 하나씩 있잖아. 근데 소나무는 그런 부분이 다른 나무들에 비해서 적잖아. 근데도 이제 나는 내 가치도 그런 것 같아. 어떤 순간의 화사함보다는 지속적으로 한결같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가치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