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묻다] "항상 똑같이"
[나를 묻다] 송병훈
‘한결같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소나무의 사철 푸르름을 떠올리며 한결같다 말하지만, 소나무의 생김새만을 두고보면 한결같이 일정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소나무의 껍질은 울퉁불퉁 투박하고, 줄기는 햇빛과 바람을 따라 꺾여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소나무의 푸르름을 기억하고 변함없음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유는 그로부터 느껴지는 꿋꿋함이 그 빛깔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소나무의 줄기가 아무리 거칠게 꺾여있을지라도 위태로워 보이지 않고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느껴진다. 어떤 변화에도 꿋꿋하게 서있는 그의 강직함에서 한결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함없는 하나의 결을 강직히 지키는 것. 변함없는 하나의 결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송병훈은 꾹 힘을 주어 눌러 그은 직선같다. 그의 낮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생각들을 듣고 있으면 묵직한 선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의 선을 확대해보면 사실 그의 일상은 작은 파동을 만드는 수많은 고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관계와 성격, 적응, 졸업 작품, 알찬 삶에 대한 고민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선은 작게 요동치지만 한결같다. 그의 결은 매끈한 직선이 아닌 높아짐과 낮아짐을 끝없이 반복하는 곡선이겠지만, 그의 선은 끊어짐 없이 그어질 것이다.
송병훈의 '변함없는 결'이라는 것은 결의 모양이 아닌 결을 유지해나가는 그의 태도를 나타내는 듯 하다.
송병훈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이름을 소개해줄래?
밝을 병(炳)에 가르칠 훈(訓)이라고 해서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정확한 뜻은 사실 잘 모르겠어. 왜냐면 뜻에 대해서 할아버지한테 물어보거나 부모님이랑 이렇게 잘 얘기를 안 하니까. 어렸을 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밝을 병, 불꽃 병이니까 환하게 빛나고 선명한 느낌에, 가르칠 훈 하니까 무언가 가르치거나 다른 사람한테 모범이 되는. 밝고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 같아.
기억에 남는 여름날이 있어?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팀플을 하는데 영상을 찍는 과제였어. ‘사냥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따라서 영상을 찍어보는 거였는데, 이걸 한 여름에 찍었거든. 근데 사다리 타기를 해서 내가 주인공에 걸린 거야. 제일 하기 싫었던. (웃음) 이게 진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과제니까 계속 NG가 날 거 아니야. 그러면 계속 해야 된단 말이야. 똑같은 것을. 특히 뛰는 장면이 있었어. 그걸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하다 보니까 제일 힘들었어. 줌에서도 만났었어서 낯선 건 없었는데 코로나라서 그런지 인연이라는 게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았어. 어차피 자주 못 보니까 서로 사람을 알아가는 데 노력을 안 하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
추구하는 관계의 스타일은 어떤 거야?
내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라서, 개인적으로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추구하는 관계라고 하면 좁고 깊은 느낌. 넓으면 내가 다 신경 쓸 여유가 안 되는 것 같아. 애초에 약간 소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근데 군대 가서 많이 바뀌긴 했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리에 갔을 때 최대한 안 어색하게 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너무 가만히 있으면 좀 그러니까. 내가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그걸 하려다 보니까 조금 버거운 느낌이 드는 거야.
원래의 너는 어떤 성격이야?
말도 별로 없고, 되게 조용하고 그렇지. 낯도 가리고. 어떤 사람은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한 번 안 사람은 오래 알고, 신중하고, 생각을 깊게 한다고 얘기해주는데 냉정하게 그게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아. 처음 봤을 때 이 사람이 나하고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가 이런 오해도 받을 수 있고. 어쨌든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데 적극적이지 않은 느낌을 받으면 상대방이 좀 안 좋아하는 것 같긴 하더라고. 그런 고민이 많긴 하지.
군대에 가서는 어떻게 바뀌었어?
군대는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소극적이게 한다고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느껴서 그냥 한 거지. 그리고 원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아니고, 다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나에 대해 잘 모를 거 아니야. 그래서 더 내가 다르게 바뀌어도 괜찮은 느낌. 원래 아는 사람들한테 내가 바뀌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바뀌더라도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 것 같기도 했고. 군대 가기 전에 걱정을 엄청 많이 했거든. 군대에서 도태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 학교랑은 다르게 같이 살아야 하니까, 눈 밖에 나면 힘드니까. 그런 걱정을 많이 해서 고민을 많이 한 거지. 내가 어떻게 행동 해야 할까.
하늘 보는 걸 좋아해?
좋아하는 편이야. 나는 자연을 감상하고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 안정되는 느낌이 들고, 예를 들어 산책을 하면서 풍경을 본다든지. 여유가 있으니까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서.
주로 어떤 그림을 그려?
나는 전부터 나무같은 자연물을 많이 그리긴 했어.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그리기 힘들어가지고. (그래도 사람이 아닌 것 중에 자연을 그리기로 선택했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자연은 일단 그릴 게 엄청 많고 내가 그곳을 안 가봤어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 그곳에 가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걸 느끼게 해줄 수 있으니까.
구현해내고 싶은 머릿속의 그림이 있어?
극사실주의로 풍경화를 한번 제대로 그려보고 싶어. 학생 때부터 이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
요즘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
요즘 졸업 작품을 하는 게 주된 일상이니까. 이걸 해내는 게 제일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져. 1학년 때만 해도 아직 졸업이 멀다 느껴지고 자기 개발을 많이 하진 않는데, 이제 작품을 해야하는 시즌이 오니까 조급한 마음이 들어. 생존에 발버둥 치는 거지. 그러니까 의도치 않았지만 이제 조금 실력이 되는 느낌. 전보다는 편하긴 한데 확실히 어려워서 편하면서도 어색한 게 되는 것 같아. 동시에 공존하는 느낌이야.
올해 꼭 해야한다고 세웠던 계획이 있어?
일단 첫 번째는 무사히 졸업하기. 그리고 두 번째는 시간을 알차게 쓰는 거야. 왜냐하면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시간이 빨리 갔던 것 같아. 수업만 했을 뿐인데 졸업이라니. 학교를 다니면서 뭔가 얻어가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서 계속 컴퓨터로만 수업을 하니까 시간이 엄청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내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하려면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작년부터 한 게 피아노를 배우는 거야. 몇 달 동안 학원에서 배웠어. 악보를 볼 줄 모르니까 일단 악보를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6개월 정도 다니다가, 디지털 피아노를 하나 사서 혼자 연습을 했지.
남은 올해 안에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림을 좀 더 많이 그리고 싶어. 내가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참 잘 안 돼서. 딜레마인데 잘하고 싶으면 연습을 해야하는데 연습을 하다 보면 뭔가 하기가 싫어져. 생각만큼 안 돼서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모르겠다!’ 하고는 그냥 안 하고 이렇게 되니까. 이걸 참고 견뎌야지 실력이 느는 건데. 더 연습하고 취직도 준비도 잘 하고 싶지.
너무 서두르지 않고, 너무 느려지지 않고 너의 템포대로 살아가는 느낌이 있어.
감정에도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변화가 있어야 좋은지 잘 모르겠어. 더 표현이 풍부한 사람들이 있잖아. 기쁠 때는 엄청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고, 화가 날 때는 화나고 그런 게 있잖아. 난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그냥 기뻐 보여 웃고, 막 ‘화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거구나 해. 화에 대해서 제일 그래. 화를 거의 안 냈어, 아니 아예 안 냈네. 화날 일이 그렇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 화날 일이 만약에 생기면 굳이 화내서 뭐하나 분란만 생기지 하고 넘어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나무가 있다면?
아무래도 소나무. 항상 똑같이 있으니까. 굴곡이 없는 게. 내 성격 자체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큰 변화가 없긴 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나무처럼 사계절 똑같은 모습이니까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