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묻다] "부담감에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했어"

[나를 묻다] "부담감에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했어"

[나를 묻다] 조해인

인간은 온전한 나로 태어나 자기로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세상의 인정을 위해, 누군가의 사랑을 위해 나다움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순간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면 나다움이 무엇인지 깊이 알고 있다는 것과 나답고자 하는 소망이 살아있다는 것을 뜻한다.

조해인은 일상 속에서 나답지 못한 순간들에 불편함을 느낀다. 때로는 상황의 압박에 부담을 느끼고, 타인의 마음만을 위해 뱉는 말에 이질감을 느낀다. 이때 그녀는 압박에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낯섦에 대한 불편함을 느낄 때 '나'는 가장 뚜렷해지고, 낯섦은 자기 확장의 기회가 된다. 조해인에게 낯섦이 긍정인 이유는 자신이 선명해지는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낯섦 속에서 나다움을 생각하는 조해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이름을 소개해줄래?

내 이름은 조해인이고. ‘바다 해(海)’에 ‘어질 인(仁)’자를 써. 바다처럼 넓고 어진 마음을 가져라라고 지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까 아빠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엄청 좋아하셨대. 그래서 딸이 태어나면 이름을 해인이로 짓고 싶다 하셔서 해인이로 지었지. 나도 내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여름날이 있어?

작년 이맘때쯤 수원에 갔었어. 내 공간을 처음 만든 거였지. 나는 자취를 한번도 안 해봤고 대학 다닐 때도 너무 가까웠으니까. 이삿짐을 다 옮기고 엄마아빠가 갈 때가 제일 기억에 오래 남았어. 여름이 진짜 더웠어. 엄마아빠가 가고 나 혼자 남아서 에어컨을 틀었거든. 그때 느꼈던 해방감, 그런게 계속 기억에 남고 그리워질 것 같아.

독립했을 땐 어땠어? 후련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복잡미묘했을 것 같은데.

엄마아빠가 너무 허전하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때는 되게 감정이 격했는데, 엄마아빠가 너무 작게 보이기도 하고, 가는 마음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했고. 내 공간이 생겼다는 건 너무 좋았는데 그만큼 책임져야 될 것도 너무 늘었으니까 고민을 진짜 많이 했던 것 같아. 진짜 어른이 된 것 같고, 책임감이 한껏 늘었던 것 같거든 그 시기에.

하늘을 자주 봐? 최근에 기억이 남는 하늘이 있어?

자주 봐. 회사에서 입사를 하고 창가 자리가 그렇게 앉고 싶었어. 근데 야속한게 관리자 정도 돼야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거야. 그래서 하늘을 보려고 회의실에 들어가서 쉬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하늘이 너무 예뻤어.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는 평일이면 계속 일을 해야 되는데 이제 내가 하늘을 많이 볼 수 있을 시간은 회사에서겠다,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어. 그전에 더 많이 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할 걸. 이제 나는 여행을 계획하기보다 앞으로 내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계획을 많이 세울 테니까. 그런게 아쉬웠지.

회사원이 된다는 건 어때?

사실 내가 지향하고 있는 것과 너무 달라. 내가 굉장히 어려워 보이나봐. 그러니까 난 푼수도 아니고, 처음보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서 다정하게 말을 거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곁을 내주는 편도 아니라서. 그런 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어려워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아. 회사 들어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요즘은 푼수가 되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근데 내가 지향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너무 어려워. 내가 아닌데 나인 척 해야 되는 그런 순간들.

스킬을 갖는 게 필요할 수 있겠다. 그런 노력들이 어때?

그렇게 노력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 오늘도 진짜 가식 떨었다.’ 이런 생각만 안 들었으면 좋겠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건 푼수가 되는 쪽보단 차라리 허점을 보이는 거. 내가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성향이 있나봐. 남한테 ‘이거 나 다 할 수 있어!’ 이렇게 하려고 하는 편인데, 허점을 보여주는 것도 관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내 성향을 좀 죽이려고 하지.

지향하는 건 뭐야?

나는 다 나다웠으면 좋겠어. 모든 사람이 매 순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고,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 불편하다 얘기할 수 있는 게 회사에서도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회사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고. 그렇게 얘기하면 되게 동떨어진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더라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게 내가 지향하는 거지.

좋아하는 것,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뭐야?

나는 눈치 안 보고 “사실 이런 거 싫어해요.”라고 말 할 수 있는 걸 좋아해. 연령이나 성별이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조해인으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고 싶고, 그런 분위기나 대화를 좋아하는데 그게 정말 안 되더라고. 특히 회사는 더 그런 것 같고.

삶에서 키우거나 가꿔보고 싶은 게 있어?

식물을 키운다는 건 정신에 좋은 것 같아. 자취할 때 식물을 들이고 기분이 너무 좋았어. 왜냐하면 살아있는 게 나 말고 또 있잖아. 그때 그게 너무 좋았어서. 말도 많이 걸고. “잘 잤어?” 이렇게. 괜히 외로웠단 말이야. “아이고 잤어? 햇빛이 필요해?” 하고 옮겨주고. 대답이 없어도 좋았어.

위로가 필요하다 느껴질 땐 어떻게 해?

오히려 우는 편이야. 많이 울고, 슬픈 영화를 보고. 위로가 필요할 때가 대부분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이럴 때잖아. 그래서 그걸 드러내려고 해 더 슬픈 영화를 보고. 그럼 도움이 많이 돼.

요즘 제일 익숙하거나 편하게 느껴지는 게 있어?

하나도 없어. 익숙하고 편한 게 진짜 없는 것 같아. 나는 집도 이사하고, 직장도 다니고, 내 집도 엄마아빠랑 같이 살던 집도 지금은 낯설어 또. 고작 1년 나갔었는데, 내 공간이 아직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나 하나, 나 하나 익숙한 것 같아. 나는 늘 내가 생각하는 건 내가 제일 많이 알고 그래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조해인은 어떤 사람이야?

나는 사실 솔직하지 못해. 이게 나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근데 다른 사람이 날 봤을 때 솔직하지 않다고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어. 다들 내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나쁜 걸 잘 표현하는 거지,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걸 솔직하게 표현을 잘 못하는 것 같아. 근데 그 이유가 나를 뒤돌아서 내가 한 이야기나 느꼈던 감정에 대해 돌아보지 않아서인 것 같아. 오히려 그냥 ‘그때 그랬구나’ 하고 오래 깊이 있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서 더 솔직하게 얘기를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좀 다음에는 이런 상황에서 솔직하게 얘기를 해봐야겠다 하는 다짐이 있을텐데 그렇지 않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연애할 때? 연애할 때 진짜 안 좋은 것 같아. 내가 얘기 안하면 모르는데, 얘기를 안 하고 있더라고. 얘기를 안 하면 스트레스 받는 건 난데 얘기를 잘 안 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좋다는 표현을 잘 안 하는 것도 있고. 그게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싫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어. 나는 굳이 그걸 표현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에 말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

반대로 요즘 어색하고 낯선 게 있다면?

말했다시피 나 이외의 모든 것이 낯설고. 아니다, 내 모습이 낯설 때도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 가끔 ‘으휴 가식덩어리다’ 이럴 때가 있어. 근데 그게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고 낯설긴 한데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고 그럴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긴 하지만. 잘 하고 있네 이런 정도.

낯설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나에겐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야. 좀 넘어보고 싶은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낯선 것을 의외로 좋아하는 것 같아. 낯선 환경에 접하는 걸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삶은 낯선 것의 연속이잖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처음엔 낯선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그런건 나에겐 긍정적인 의미야. 지금 우리 회사도 그래. 만족스러워.

올해 이건 꼭 해야겠다고 세웠던 계획이 있어?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꼭 하고 싶어. 나는 시골보다 도시가 좋아 뉴욕처럼 반짝반짝하고, 밝고.

비슷하게, 올해 안에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어?

취업이었지. (부담도 있었어?) 응. 근데 그 순간 부담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고 하고자 했던 걸 놓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했어. 부담감을 빨리 떨쳐내고 싶은 마음에 하고 싶은 거에 계속 타협할 것 같은 거야. 근데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아.

김성재를 인터뷰하면서 나무와 청년의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했어. 닮았다고 생각하는 나무의 모습이 있다면?

나는 자란지 얼마 안 됐고, 아직 가지도 얇고, 기둥도 얇고, 나이테도 별로 없고 그런 나무 같아. 왜냐면 나는 아직 잘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고 하고 싶은 건 너무 많고, 느껴야 될 것도 너무 많고 그래서.

그 나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잔가지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두터워졌으면 좋겠지. 그래서 비나 바람을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이 그렇게 크고 싶어.

얇은 가지를 가진 우리가 어떻게 꺾이지 않고 두텁게 자라날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해 품는 기대와 소망이 얇은 가지를 지탱해준다. 조해인을 향한 소망을 품어본다. 그녀에게 솔직하고 싶은 열망이 있음을 느낀다. 그녀가 가장 조해인답게, 나다운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며 살아갈 것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