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묻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

[나를 묻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밝은 노란 튤립과 어울리는 희명을 만났습니다.

[나를 묻다] 양희명

- 너의 이름에 대해 소개해줄래?

“내 이름은 양희명이야. 바랄 희 자에, 밝을 명 자를 써서 밝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아빠가 지은 걸로 알고 있어. 나름 이름대로 살고 있지 않나. 나도 그 의미가 마음에 들어. 나도 노력하는 부분이 있고, 부모님한테 그런 기대를 받고 자랐으니까. 내가 밝기를 바라는 건 부모님의 처음 바람이지 않았을까. 사람은 기대해주는 만큼 자랄 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 믿어주고 기대하는 만큼.”

- 가장 기억에 남는 여름날이 있어?

“본격적으로 여행을 못 갔던 첫 여름이었어. 그래도 생각을 해보면 여행을 못 가니까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아. 추석 때 아빠가 낚시를 좋아하는데 같이 가고 싶었나봐. 한창 태풍이 온다고 할 때라 미리 예약을 안 했는데, 태풍이 안 와서 전 날 가야겠다 해서 전화를 해보니까 당연히 예약이 다 찼지. 그래서 아빠가 너무 속상해 하는 거야. 우리 가족이 어렸을 때 가족 여행을 엄청 많이 간 편은 아니거든. 가족들 모두가 이제야 ‘우리 네 명’에 생각이 커진 때였어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 아빠가 너무 속상해 하길래 안 되겠다, 어디라도 가야겠다 해서 집 근처에 야외에서 바베큐를 할 수 있는 데에 갔어. 내가 힘내서 찾아보고 갔는데 공부도 하던 때니까 지친 거야. 가족들한텐 미안하지만 아빠한테 좀 눕고 싶다 그랬어. 근데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거야. 차박은 못 갔지만 바로 트렁크 열고 돗자리 깔고 침낭을 펴주었는데 제법 괜찮더라고. 그때가 딱 해가 질 때쯤이라 되게 좋았고, 아빠가 엄청 신나하는 게 보이는 거야. 그걸 보는데 마음이 너무너무 좋더라고. 원래 차박의 묘미 중 하나가 바비큐와 별인데, 내가 별을 좋아해서 별 보이는 데를 찾겠다고 차를 끌고 돌아다니다가 백운호수에 차를 세우고 엄마랑 아빠랑 같이 손잡고 한참을 걸어다녔거든. 별이 잘 안 보이는데도 별을 찾고. “저게 북두칠성이 아닌가?” 하면, 아빠가 맞는 것 같다고 하고, 엄마가 “저게 카시오페아지” 이러고. 뻥튀기 아저씨가 있는데 아빠가 이건 무조건 사먹어야 한다고 해서 사고. 그렇게 하루종일 넷이서 붙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아. 생각해보니 되게 좋은 날이 있었네.”

- 최근 하늘을 본 기억이 있어?

“나는 하늘을 맨날 봐. 하늘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보지. 별이 있는 하늘을 제일 좋아해. 시험기간에 학교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겨울 밤에 공부하다 나와서 새벽에 하늘을 보면 완전 까만데 별이 그렇게 잘 보였어. 그리고 데일리한 하늘이라고 하면 연구실 건물이 7층인데 지긋한 실험실이지만 그 실험실 베란다에서 보이는 노을 뷰가 또 뷰 맛집이야. 지긋지긋한 곳이지만 가끔씩 그곳에서 문 열고 뷰를 이렇게(가만히) 보고 있거든.”

- 최근에 찍었던 사진은 뭐야?

“요즘 자주 찍었는데, 어제도 되게 좋아하는 친구랑 같이 찻집에 갔어. 미리 예약해서 갔던 곳인데, 차랑 티 푸드 조그마한 거, 양갱, 화과자가 같이 한 상 나와. 그 공간이 예뻤어. 일본 여행 온 느낌도 좀 나고. 그래서 거기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도 올렸지. 한 일 년 전부터 가겠다고 벼르던 데거든. 원래 되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코로나이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니까 못 가다가 친구랑 같이 가서 사진도 찍고. 어제는 비가 좀 와서 그 공간이랑 잘 어울리더라고. 창가에 앉아서 빗소리가 들렸어.”

- 키우거나 가꾸고 있는 것이 있어? 없다면 그래보고 싶은 것이 있어?

“키우고 있는 건 없는데,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 최근에 누가 튤립 구근을 심었다는 거야. 생각보다 잘 자란다고 해서 지금은 튤립을 키울 계절이 아니긴 하지만, 식물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또 최근에 바질 토마토 에이드를 먹었는데 너무 맜있는 거야. 그래서 바질을 키워야겠다, 내가 수확해야겠다, 농부의 기쁨!(을 느껴야겠다 생각했어.) 동물은 아직 엄두가 안 나는 것 같아.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할 때 지금은 내가 걔랑 계속 같이 있어줄 수 없으니까. 어렸을 때는 강아지 갖고 싶다고 막 울고 그랬는데, 엄마가 절대 안 된다고 했거든.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그걸 네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애착 인형만 없어져도 난리 나는 애였거든. 엄마가 얘는 안 되겠다는 걸 그때 알았던 거지. 식물이 좋아서 나중엔 나도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

- 요즘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 있어?

“연구실 사람들이랑 배달을 시켜 먹으니까, 안 먹는 게 없는 것 같아. 다양하게 먹는데, 그 중에서도 요즘 내가 좋아하는 건 동남아 음식, 베트남이나 태국 음식이야. 더웠으니까 너무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맨날 기름진 배달음식만 먹을 순 없잖아. 그래도 베트남 음식은 향긋한 채소도 많이 들어있고 간 자체가 입맛을 돋우는 것 같아. 분짜나 월남쌈, 반세오 이런 거 먹으니까 좋더라고. 여행을 못 가는 게 이걸로 대체도 되는 것 같고. 연구실에 베트남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사이가 다들 좋은 편이야. 가끔 내가 베트남 친구들한테 ‘반세오 먹자!’하고 졸랐어. 그래서 베트남 친구들 한 세 네명 정도 모여서 집에서 육수를 끓이고, 고기 삶아서 연구실에 가지고 오고. 정말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 그런 게 되게 특별한 것 같아.”

-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가 있어?

“내가 호주로 교환 학생을 갔었는데, 한인 식당을 가도 음식들이 약간 현지화 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는 맛이 아닌 거야. 그래서 해서 먹을 수밖에 없는 거지. 다들 학생들이니까 매일 요리를 해 먹는 것도 굉장한 일이었어. 그래서 친한 한국인 4~5명이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어. 친구 중에 한 명이 스테이크를 해준다고 올리브유랑 바질, 오레가노에 재서 구워주는데 와, 호주에서 먹은 스테이크 중에 제일 맛있었어. 친구들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니까 더 특별했던 것 같아.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기도 하고. 타지에서 살아가는 그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먹는 걸 통해서도 많이 풀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 해먹은 음식들을 통해서도 그랬던 것 같아.”

“또 한창 시험기간에 너무 바쁘고, 영어로 공부하고 시험을 봐야하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거야. 근데 언니 중에 한 명이 “희명아 너 바쁘니까 언니 방 와서 밥 먹어”라고 해줬던 게 생각나. 그게 이름도 없는 요리였거든? 그냥 맛있는 거 몇 가지를 때려부은 음식이었어. 정말 요리에 쓸 여유도 없다고 느꼈을 때 언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그게 그렇게 고마웠어.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고. 힘든 시기를 같이 보냈던 것들도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얘가 지금 바쁘구나를 알고 ‘밥은 먹고 있나?’ 그런 생각을 언니가 했을 것 같으니까.”

- 요즘 제일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뭐야?

“나는 학교라는 장소가 제일 편하고 익숙해. 아무래도 성인이 되고 모든 시간을 거기서 보냈었으니까. 요즘은 가끔 ‘이번에 졸업하면 정말 이전 같진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이렇게 자주 찾지 않을 거고. 난 학교를 되게 좋아하는 애였거든. 그래서 대학원을 온 것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 (어떤 게 너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아?) 산책을 진짜 좋아하는데 산책하기 너무 좋아. 학교가 평지에 적절한 크기고 바로 앞에 일월저수지도 있어서 거기도 산책하기 되게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 곳이야. 내가 좋아하는 파랑과 초록이 다 있는 곳, 파란 하늘과 초록 잔디가 잘 보이는 곳. 처음부터 좋았다기 보다 익숙해져서 좋아진 것도 있는 것 같아. 익숙하니까 좋고, 좋으니까 또 계속 머무르고. 졸업은 하고 싶지만 동네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 그 동네가 지금은 내 마음의 고향이거든. 대한민국에서 나한테 제일 편한 곳이지 않을까.”

- 반대로 어색하고 낯선 것이 있다면?

“요즘은 낯선 게 없어. 맨날 있는 바운더리 안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낯선 걸 좋아하긴 해. 그런 것에 두려움은 별로 없는 것 같아.”

- ‘올해 이건 꼭 해야겠다’라고 세웠던 새해 계획이 있었어?

“운전면허 따기였어. 사실 필기는 작년 7월에 보고 미룬거야. 되게 좋았던 게 운전 연습 하면서 싸운다는 얘기가 많잖아. 근데 아빠한테 배우니까, 우리 아빠는 나한테 화를 안 내더라고. 거짓말 안 하고 아빠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를 느꼈어. 아빠도 피곤할 텐데, 시간 내줘서 되게 고마웠어. 그래서 한 번에 붙었거든. 오랜 숙원사업을 해내서 굉장히 알찼어.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졸업하면 직장에 가기도 할 거고, 내가 항상 가고 싶은 곳도 많아. 나는 내 체력이 감당이 되는데, 나랑 노는 건 좋지만 그게 힘든 친구들도 있으니까. 오고 가는 길이라도 좀 편했으면 좋겠는 거야. 그래서 좋아하는 곳에 조금 더 제약없이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제일 컸던 것 같아.”

- 그럼 남은 올해 안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어?

“가족 여행을 가고 싶어. 해외가 안된다고 해도 부산이나, 조금 멀리. 넷이 있는 소중함을 많이 느껴. 스물 여섯이 괜히 스물 여섯은 아닌 것 같아. (소중함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어?) 호주 교환학생을 3년 전 23살에 다녀왔어. 내가 호주에 가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때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신 거야. 아빠 안에서 혼란이 심했나봐. 우울감도 컸고. 나는 몰랐거든. 호주에서 나 혼자 살아내는 것도 정신 없어서 엄마가 나한테 말도 안 했었어. 나중에 알게 됐는데 엄마도 나를 보내고 되게 많이 울었대. 돌아와서도 나랑 동생은 자취하고, 가끔 주말에 가면 집이 무슨 절간이야. 너무 조용하고 생기가 없는 거야. 엄마아빠가 뭔가 너무 죽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엄마아빠한테 넷이 같이 살자고 그랬어.”

“걱정을 많이 했어. 주말에 잠깐씩 엄마를 보러 가면 내가 엄마랑 그렇게 싸우는 거야. 20살에 독립 한 뒤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엄마랑 잘 지내고 싶고, 엄마를 제일 좋아하는데 집에만 가면 싸워서 한 동안은 막 미쳐버리겠는 거야. 그래서 딸이 엄마랑 왜 싸우는지 책을 읽었어. 대한민국의 모녀지간을 다룬 책이 있었거든. 거기서 조금은 왜 싸울까에 대한 걸 얻을 수 있었어. 한국의 엄마와 딸은 한국 사회의 유교, 가부장적인 것의 특수성 때문에 더더욱 서로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대. 엄마가 딸에게 거는 기대도 그렇고, 친구가 나한테 ‘희명아 이건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면 그게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면서, 엄마가 나한테 그러면 그건 안 되는 거야. ‘엄마 왜 나랑 생각이 달라?’가 되는 거야. 그 책에서는 딸과 엄마가 정서적으로 분리가 안 되어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엄마가 나랑 똑같은 사람인데 다른 말을 하는 게 스스로 용납이 안 돼서 엄마한테 그렇게 화가 나고, 엄마가 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지, 엄만데 왜 모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같이 살면서 체득된 게 더 많았지. 근데 오히려 같이 사니까 안 싸우더라고. 엄마도 내 표정이 보이고 얘가 뭘 하고 있는지를 더 잘 아니까. 나도 엄마가 오늘 뭐 했는지를 아니까, 이해가 있으니까 서로 협조적이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스무살 때 갑자기 똑 떨어져 나갔는데, 우리가 너무 준비없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오히려 같이 있는 채로 지금은 준비가 된 느낌. 엄마도  ‘얘가 그래도 밖에선 자기 몫은 하나보다’라는 게 인정이 되는 것 같고, 나도 그렇게 이해받는 걸 느끼니까. 그리고 바쁜 시기에 내 이런 마음을 알아주고, 아무렇지 않게 보듬어주고, 밤 늦게까지 야근할 때 엄마가 가끔 차로 데리러 오고. 엄마뿐이구나라는 걸 느껴. 무엇보다 같이 사니까 엄마랑 아빠가 훨씬 살아나는 게 보여서. 결정적으로 얼마 전에 갔던 여행에서 같이 있을 때 우리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 우리 넷이 다 좋아하고 있구나. 같이 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